[스크랩] 이번 미국 내셔널을 끝으로 링크를 떠나는 두 사람을 보면서....
미국내셔널이 한창 진행중이죠…
이제 관심은 여자싱글로 옮겨갈 텐데요..
남자싱글과 함께 결과가 나온 페어 결과를 보고 생각이 나서 글을 써 봅니다.
이 얘기는 이번 미국 내셔널에서 3위로 마친 이노우에 레나/ 존 볼드윈 두사람에 관한 영상과 그 영상에 나오는 글을 번역한 내용입니다. 제가 글재주가 없어서, 늘 이런 번역글만 올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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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ve meant the most to me.
I wanna spend rest of my life with you.
<이노우에 레나>
1976년 일본 출생
병약한 어린 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뭔가 운동을 시키려고 했다.
그 때 집 근처에 있던 스케이트 링크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 스케이트와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노력한 보람이 있어 10대때 재능이 꽃을 피웠다.
알베르빌, 릴레함메르 올림픽의 (일본) 올림픽 대표로 활약
스케이트를 권해준 아버지와 가족의 성원을 받으며 순로롭게 실력을 쌓아 갔다.
그런 가운데 맞이한 나가노 올림픽 대표선발전
이 일본선수권을 돌파한다면 세번째 올림픽 출전이 된다.
그러나….
그녀 인생의 커다란 시련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대표선발이 걸린 올림픽시즌 초반
어느날 그녀에게 연락이 온다.
누구보다도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준 아버지의 죽음
향년 46세
폐암이 원인이었다.
스케이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
선수생활에 대한 든든한 응원
많은 것을 베풀어준 아버지
커다란 충격을 받아
대표선발이 걸린 대회에서는
전혀 실력을 보이지 못한 채 끝나, 대표탈락이 되었다.
거듭되는 쇼크로 한동안 스케이트에서 멀어졌었다.
어머니는 이때 그녀가 스케이트를 그만둔 거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그러나 어느날…
그녀는 천천히 스케이트 부츠를 손에 쥐었다.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는 어머니를 보고
그녀는 다시 한번 스케이트를 할 마음을 먹었다.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많은 생각들이 담겨있지만, 하지만 아무 말없이 연습에 몰두하는 그녀
복귀할 날을 향해 페어의 파트너를 찾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도 그렇지만 일본은 페어의 남자선수층이 엷었다.
외국선수와 페어팀을 할 경우,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같은 국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녀는 고민 끝에…
아버지의 유지(遺志)에 따라, 혼자 미국에 건너갈 것을 결심하고 일본을 떠났다.
낯선 타향에서 시작된 새로운 선수생활
생활비와 레슨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독히 연습을 계속했다.
새 의상도 마련하지 못해, 경기 의상은 언제나 직접 손으로 기운 것이었다.
힘겨운 환경에서 연습을 계속해 온 어느날…
그녀는 몸의 이상을 호소했다.
의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은 폐암입니다>
불행중 다행으로 아직 암의 진행은 초기단계였다.
수술을 하면 완치는 되겠지만, 그러면 장기간 스케이트를 떠나야 한다.
연습을 계속하기 위해 그녀는 약물치료를 택했다.
1년전에 아버지를 잃은 폐암
절대로 어머니에게 말할 수 없었다.
최근의 항암제 투여는 효과도 크지만, 몸에 주는 부담도 크다.
격심한 부작용에 시달리면서도 혼자 연습을 계속하는 그녀
그런 가운데 사고가 일어났다.
연습중에 잘못 떨어진 그녀
의식이 없었는지 빙판에 정면으로 머리를 부딪쳤다.
두개골 골절에 앞니는 전부 부러졌으며, 몇시간 동안 의식불명이었다.
게다가 난소파열도 밝혀져, 적출수술을 받게 되었다.
의식이 돌아온 후…
낙하의 공포에 따른 PTSD
(심적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증후군)
리프트나 점프가 필수요소인 스케이트 선수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심적 장애였다.
그런 증상 때문에 이유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는 밤이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뜻대로 안되는 몸
지칠대로 지친 마음
마음과 다른 절망적인 환경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한사람의 남자.
<존 볼드윈>
1973년 미국 출생
스케이트 일가에서 자라, 미국에 건너간 이노우에의 페어 파트너가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처절한 몇년간의 투병생활
그는 조용히 그녀를 지켜갔다.
그녀의 몸상태로 서서히 회복되어, 이 때쯤 거의 병을 극복했다.
결코 쉬지 않았던 힘든 연습의 성과도 조금씩 대회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어제보다도 오늘
오늘보다도 내일…
정말 조금씩 두 사람의 노력을 쌓아가는 날들
그렇게 맞이한,
토리노 올림픽 대표선발전인 2006년 전미선수권
선수로서는 더 이상 젊지만 않은 두 사람에게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 찬스였을 것이다.
쇼트프로그램에서 4위로 처진 두 사람은 프리프로그램이 마지막 찬스였다.
그들의 무기는 슬로우 트리플악셀
그러나 국제대회사상 성공한 예가 없었다.
슬로우 트리플악셀 성공으로 역전우승을 하고, 토리노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다.
릴레함메르 올림픽이후 실로 (이노우에는) 12년만의 일이었다.
2006년 토리노에서는 페어 7위로 선전했다.
12년 만의 부활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응원해 준 천국의 아버지에게 무엇보다도 큰 선물이었다.
이때 다시 한번 성공한 슬로우 트리플악셀은 올림픽사상 성공한 유일한 예로 남아 있다.
시간은 흘러.. 2008년도 전미선수권 연기를 마친 후의 해프닝….
그의 목소리는 관중의 환호성에 들리지 않았다.
그녀를 안으며 이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You’ve meant the most to me.
I wanna spend rest of my life with you.
Will you marry me?
은반위, 그녀의 눈에 빛나는 눈물
관객에게도 틀림없이 그녀의 <YES> 가 들렸을 것이다.
어느 한사람의 일본인
우리들이 아는 그 사람은
하늘이 내린 모든 시련을 받아들였고,
하늘이 준 조그만 기회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준, 그리고 앞으로도 되어줄 남자
바다 저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의 운명적인 사람
그들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스토리…
꼭 언젠가 또다시 그들 스토리의 속편을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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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두사람의 스케이팅 인생이 막을 내릴 것 같습니다.
미국은 페어 출전권이 2장인데…아깝게도 이노우에/볼드윈 페어는 3위로 마쳤습니다.
2위와는 1점도 채 차이가 나지 않는 박빙의 경기였는데…쇼트에서 실수한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토리노때 중국의 장-장 페어의 연기를 보고, 페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션/짜오 페어의 연기에서 페어의 참맛을 조금 느꼈는데… 이노우에/볼드윈 페어는 스케이팅 외에 많은 걸 느끼게 하네요…
이노우에/볼드윈 페어는 올림픽 보결선수로만 등록하고…나머지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랍니다. 어쩌면 아직 영상을 보진 못했지만, 내셔널 프리 연기가 그들의 연기를 보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케이트 인생의 막은 내리더라도, 앞으로 코치로서 두 사람의 따뜻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볼드윈이 이노우에에게 빙상의 프로프즈를 한, 2008년 미국내셔널 영상을 붙여 놓을께요 ^:^
이노우에/볼드윈 페어의 마지막 프리영상이 막 올라왔습니다..
보고나니까 너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