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전직 피겨선수가 운치있게 쓴 연아와 마오의 피겨대결사(펌글)
재미있는 필치로 알기쉽게 쓴 좋은 글입니다...
올림픽 직후에 쓴 글인데...조금 길지만..
김연아선수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아주 좋은 자료같네요..
혹 뒷북이면 양해해 주세요..요즘 글들이 너무 많아서..
(출처 cafe.daum.net/USmilitary)
세계인의 축제라는 올림픽도 거의 끝나가네요.
제가 가장 기대하며 지켜보았던 피겨부문에서 '예전보다는' 납득할만한 성적이
나온것에 우선 안도하고 있습니다.
이 피겨라는 운동,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뒤에선 돈의 논리가 판치는 아주 지저분한 운동이거든요.
(보잘것없는 국내대회에서도 참 여러가지 돈이 왔다갔다 한답니다.)
저도 초등학교 시절 피겨를 했었고 선수생활도 했었지만....
(요 이야기는 또 잠이오지 않는 새벽에 한번 길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이지, 제가 살아가는동안 우리나라에서 월드챔피온, 올림픽금메달리스트가 나올것이라는 생각은 감히 꿈에서조차 해본적이 없었답니다.
김연아라는 선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아니, 사실 김연아라는 선수를 알고 있었고 잘한다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이상 절때 지금처럼 훌륭한 선수는 될수 없을꺼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었죠.우리나라 연맹은 피겨에 재능있는 선수들을 상대로 운동을 포기하게끔 하는 연맹이거든요.
저의 생각을 바꿔주고, 한명의 피겨팬으로써 자부심을 갖게해준 그녀에게 너무 고맙습니다.
그동안 써보고 싶었던 글을 한번 써보려고하는데
장문의 글이 될것같구요....^^; 손발이 오그라들수도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1. 소녀의 등장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사토유카는 그리 대단한 선수가 되지 못하였고, 그 후로 쭉 피겨에 대단한 투자를 하였으나 성적은 점점 더 초라해져 갑니다.
2002년 수구리후미에가 월드에서 동메달을 따긴 하지만 같은해 열린 올림픽에서는 5위에 그치고,쿼드러플 살코라는 대단한 점프를 뛴다는 안도미키선수도 국제대회에서 단한번 인정받는 수준이었구요.
이토미도리의 뒤를 이어 일본인의 욕심을 채워줄 선수가 등장하지 않는것에 연맹은 조급해지죠.
그러다, 이토미도리를 배출한 나고야 아이치현의 한 스케이트클럽에서 한 어린
소녀가 '트리플악셀'이라는 점프를 뛴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지금의 마오아사다 선수이죠.
특유의 승부근성으로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는 이 선수는 남자선수들과의 겨룸에 있어서도 조금도 지지 않으려고 하고,그러다보니 트리플악셀이라는 점프를
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언론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전파했습니다.
이렇게 아사다마오선수는 국제피겨계에 '언플'로 등장하게 됩니다.
천재소녀, 트리플악셀소녀라고 하면서요.
국제대회에 나와서 트리플악셀 뛰는것을 보여주기도 전에 이미 각종 커뮤니티나 포럼에서는 아사다마오가 트리플악셀을 뛴다는
것이 알려져 많은 피겨팬들이 알고 있었고 그에 많은 기대를 하였습니다.
국제대회 피겨부문에서 10위안에 드는 선수가 단 한명도 배출되지 않은 피겨 변방국가에서.. 초등학교 5학년, 만 10세의 나이로 트리플 5종을 완성한 소녀가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소녀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소녀의 부모님을 제외하고 말이죠.
"트리플 5종을 다 뛰는 선수는 지금도 있지 않느냐, 그 선수의 국제대회 성적은
어떤가. 우리나라선수들은 트리플5종을 다 뛰어도 국제대회 나가면 좋은성적을 받을수 없다.(그당시엔 구채점제였기 때문에 출신국가에 대한 차별이 더더욱
심했던 때 였습니다.) 우리나라는 피겨저변이 열악하기 때문에 성장기에 찾아오는 부상때문에 큰 선수가 되기는 어렵다."
트리플5종을 여자싱글선수로는 유래없는 훌륭한 퀄리티로 뛰어내는데도
그 아무도 이 소녀를 눈여겨 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 소녀는 올림픽을 목표로 묵묵히 노력하며 자신의 길을 갑니다.
2.주니어국제무대 데뷔
2004년 가을, 미국에서 열린 주니어그랑프리 시리즈에서 마오는 알려진대로
'트리플악셀'이라는 점프를 뛰어내며 우승하고 화려하게 데뷔합니다.
일본언론은 결과를 주목하며 더욱 신나게 떠들어댑니다. 트리플악셀을 뛴 최연소 주니어선수 국제무대 데뷔!
여기저기서 그 소녀가 뛰는 트리플악셀에 대한 회전수와 랜딩방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만 단 한마디로 모조리 묵살당합니다.
"그래도 저 나이에 트리플악셀을 뛰지 않느냐."
그렇게 소녀는 차세대 여싱계를 이끌어갈, 지배할 재목으로 평가받으며
단한번의 주니어대회 우승으로 엄청난 인지도를 갖게 됩니다.
그보다 먼저 헝가리 부다패스트에서 열린 주니어그랑프리 시리즈에서
피겨 변방국가 출신의 한 소녀가 대단한 퀄리티의 트리플러츠 콤비네이션점프.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점프를 뛰어내며 1위를 차지합니다.
전혀 홍보가 되어있지 않던 이 선수가 1위를 할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소녀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고,
쇼트를 관람하러 갔던 헝가리 현지 피겨팬은
'이런 소녀가 나오는것에 대한 전혀 정보가 없었던것이 이상하다,
알았다면 촬영장비를 준비해갔을것이다'고 하면서 프리경기에서는 캠코더를 준비해서 직접 영상을 찍었고 이 소녀의 영상이 외국포럼에 올라옵니다.
(이때 정말 눈물이 나더군요.....지금생각해보면.....)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자국언론은 조용했고
바로 다음주에 열릴 주니어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천재소녀가 트리플악셀을 뛰는것을 볼수있다는 기대감에 이 소녀의 등장은 금새 묻히고 맙니다.
3.첫 대결
하지만 막강한 언플로 '천재소녀'의 입지를 굳힌 아사다마오는 pcs를 더 많이 받게되고 쇼트결과로 이미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순위가 갈립니다.
프리도 양상은 비슷했습니다.
쇼트 클린에도 불구하고 점수차이가 많이 갈린 후 치러진 프리경기에서는
연아양이 몇가지 실수도 하였고..
아사다마오선수는 트리플악셀을 구사하고..
'겉으로 보기에' 클린한 경기를 펼치며 주니어그랑프리파이널 사상 2위와 가장 큰 점수차를 내며 압도적인 우승을 합니다.
아사다마오선수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귀국하고
연아양은 '트리플악셀은 연습하고 있냐, 언제쯤 가능하냐, 트리플악셀을 뛰면 일본의 마오아사다를 이길수 있느냐' 이따위 질문공세를 받으며 귀국합니다.
언론의 압박에 그당시 연아선수를 담당했던 지현정코치는 '연아에게 트리플악셀을 연마하게 하겠다'고 언론에 공언하게 됩니다.
4.시니어/주니어
주니어월드까지 우승한 아사다마오는 시니어그랑프리 2개대회에 초청받아
시니어에 진출하게 되고
시니어그랑프리 1개만 초청받은 연아는 시니어그랑프리 1개대회 참가는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하고 주니어에 남게 됩니다.
(사실 주니어월드 준우승자도 다른나라들은 선수를 시니어그랑프리 2개대회에 쉽게 배정받게 합니다만...우리나라 연맹은..;;)
마오가 없는 주니어무대에서 연아는 1위를 독식하게 되고
마오는 시니어에 데뷔해서도 트리플악셀을 선보이며 호성적을 거뒀고, 파이널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오의 트리플악셀은 대회마다 동영상이 뜨면서 계속 '이것이 정말 트리플악셀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 받습니다.
그리고 그 시즌 시니어그랑프리 파이널은 일본에서 개최되었고
94년 사토유카가 그랬듯 그랑프리파이널은 자국어드벤티지를 듬뿍 받은, 첫 진출한 주니어나이의 아사다마오가 우승을 하게 됩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마오의 시니어대회 우승을 지켜본 일본인들은
룰을 고쳐서라도 아사다마오를 올림픽에 내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힙니다.
그러나 아무리 막강한 일본연맹도 반백년간 유지되어온 룰을 고칠순 없었고
일본은 토리노에 안도미키, 수구리후미에, 아라카와시즈카를 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기대하지않았던 노장 아라카와 시즈카선수가
피겨 여자싱글선수로써는 처음으로 올림픽금메달을 자국에 선사합니다.
하지만 금메달리스트인 아라카와시즈카선수는 월드에도 참가하지 않은채 바로 은퇴해버리고
올림픽에서 처참한 모습을 보여준 안도미키는 언론의 질타를 받았으며,
차세대 피겨요정은 아사다마오라는것이 굳어지게 됩니다.
5. 재대결
그랑프리시리즈와는 달리 isu챔피온쉽인 사대륙, 유로, 월드 그리고 올림픽은 어린선수의 참가를 철저히 제한합니다.
주니어선수이 참가할수 있는 isu챔피온쉽은 주니어월드챔피온쉽이 유일하기 때문에 이미 시니어에서 우승했지만 아사다마오도 이에 참가합니다.
일본언론은 시니어에서 우승한 아사다마오의 주니어월드 우승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마오가 없는 주니어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된 연아역시 우승후보로 꼽힙니다.
하지만 연아의 우승은 '마오가 트리플악셀을 실패하고 연아가 클린했을때' 라는 전제가 붙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납니다.
먼저 경기를 한 연아는 흠잡을곳이 별로 없는, 시니어급의 기술을 선보이며 무난하게 치러냈고
연아의 선전에 부담을 느낀 마오는 첫 점프였던 트리플악셀을 싱글처리하며 시종일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과는 연아의 압승.
하지만 언론은 이렇게 보도합니다.
아사다마오가 실수를 했기 때문에 연아가 이겼다고...
자국언론조차도 실수한 마오덕분에 어부지리로 우승했고,
마오가 완벽한 경기를 했을때 이기려면 연아도 트리플악셀을 뛰어야한다고
더더욱 목소리를 높힙니다. 그놈의 트리플악셀-_-
6. 스포트라이트/부상
두사람의 모습은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
마오는 이토미도리의 뒤를 이을, 일본의 올림픽 2연패 꿈을 실현시켜줄 차세대
피겨요정의 자리를 확고히 하며 각종 cf, 방송에 등장합니다. 전국가적인 지원도
이어져서 혼자 사용하는 연습링크도 배정받고
어딜가도 대단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연아는 각종 부상이 선수생명을 위협합니다.
고관절부상, 꼬리뼈부상, 골반부상, 발목부상, 허리부상...
몸 어디 한군데 성한곳 없는데...
트리플악셀을 위한 강도높은 훈련까지 소화하려니 부상은 더더욱 악화되고
주니어월드 우승 이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 되었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부츠의 무게중심이 계속 맞지 않고, 맞는 부츠를 찾기 너무 어려웠으며,
부츠를 교체할때마다 적응하는것이 너무 어려워
고통을 감수하고 타려고 해도 타지질 않습니다.
심각하게 은퇴를 고려하는 상황까지 오게 됩니다.
그해여름, 캐나다 토론토로 전지훈련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도 원하는 '트리플악셀'을 연마하기 위해서였죠.
미스터 트리플악셀이라고 불렸던 88년 캘거리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브라이언
오서를 찾아가 트리플악셀을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만, 곧 중단합니다.
오서코치와 연아어머니, 크리켓클럽의 테크니컬담당 스텝들이
"연아가 트리플악셀을 하려고 들면 할수 있겠으나,
연아의 몸은 트리플악셀을 뛰려면 많은 위험이 따르고,
또 트리플악셀을 뛰지 않아도 훌륭한 3-3 콤비네이션점프와 극강의 퀄리티를
가진 트리플점프들을 뛸수 있기 때문에 꼭 트리플악셀을 뛰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연아의 스케이트 인생은 다시 시작됩니다.
7. 시니어에서의 첫 맞대결
시니어그랑프리시리즈에서 거둔 좋은성적을 바탕으로 두 선수 모두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게 됩니다.
강력한 우승후보로는 아사다마오가 지목되구요.
그당시 함께 파이널에 진출했던 율리아세바스티앙,수구리후미에,사라마이어
선수는 노장이었고, 안도미키는 부상에서 회복이 덜 된 상태였으며,
연아 역시 시즌중에도 계속 부상이 시달렸고 처녀출전이기에
판정에 따른 불이익이 필수적으로 따라오므로
이런 선수들이 트리플악셀을 뛰는 천재소녀를 이기는것은 힘들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거든요.
쇼트는 예상대로 마오1위, 2위 미키 3위 연아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프리도 쇼트와 크게 다르지 않을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예상을 뒤엎고 연아는 테이핑을 한 몸으로 약간의 실수 외엔 전체적으로 클린하게 경기했고 퍼스널베스트를 갱신하게 됩니다.
반면 연아의 선전에 또 위축이 된 마오는 트리플악셀, 트리플러츠를 번번히 실패하여 시즌 최저점을 기록하며 준우승을 하게 되었구요.
이때도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사다마오가 실수를 했기 때문에 연아가 우승했다."
8.새로운 시작
그동안 신채점제에 들어와서도 손대지 못했던 롱엣지에 대한 대대적인 룰 개정이 이루어집니다.
아주 많은 치팅 중에서도 플러츠, 립, 토악셀등 도약관련해서 부적절한 엣지나 도약방향이 잘못된 점프에 대해 '경고마크'를 주기로 한거죠.
하지만 감점의 의무는 없었습니다. 고쳐야 하긴 하지만 너무 많은 선수들이 롱엣지도약을 가지고 있으므로
바로 감점의무화를 하면 혼란이 예상되어 우선 그 선에서 끝내기로 합니다.
선수들은 곧바로 대책마련에 들어가구요.
전시즌 월드우승자인 안도미키선수는 롱엣지교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월드는 우승했고, 남은건 올림픽인데 아직 2시즌정도 여유가 있는데다 롱엣지교정을 하지 못하면 올림픽을 낙관할수 없다는 판단으로
선수생명을 건 모험을 시작한거죠.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계속 부상에 시달렸으며 잘 뛰던 러츠까지 흔들리기 시작했죠.
결국 한시즌을 통채로 날리고 월드는 참가했다가 기권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시즌을 날린 끝에 롱엣지교정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다, 벤쿠버올림픽에서 롱엣지선수들에 대한 감점의무화가 될지 안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꼭 고칠필요가 있나 하는 판단을 하는 선수들도 많이 생깁니다.
미라이나가수, 레이챌플랫, 캐롤라인장, 아사다마오 등은 교정할 엄두도 못내거나 ,교정을 시도했다가 다른 점프까지 흔들리는것을 경험하고 바로 중단하죠.
교정을 시도했다가 다른 점프들까지 뛸수 없는 상황이 되자 전격 롱엣지교정을 중단한 아사다마오는 다른 전략을 세웁니다.
금메달제조기로 불리는 타티아나 타라소바코치를 찾아가 안무를 받는것이었습니다. 07월드에서 마오경기를 해설하며
"이 선수의 프로그램 구성은 활주와 점프 스핀밖에 없다. 너무 저급한 프로그램이다."라며 혹평했던 타라소바코치가 어쩐일인지 마오에게 프로그램을 짜 줍니다. 뭐 이유는 저도 모르죠+_+;
정석점프, 점프의 교과서라고 불릴만큼 정확하고 깨끗한 점프를 뛰는 연아는 룰이 어떻게 개정되도 영향받을일이 없습니다.
하던대로 토론토에서 캠프를 차리고 차기시즌을 준비합니다.
9. 눈물의 08월드 (라고 쓰고 유로월드 혹은 머니월드 라고도 합니다.)
그랑프리파이널 2연패를 하고 토론토에서 훈련중이던 연아는 심한 고관절 부상을 당하고 예정했던 사대륙선수권대회도 스킵한채 치료를 위해 한국에 옵니다.
치료차 귀국했지만 자국에서 열리는 사대륙선수권대회를 (부상때문에) 스킵했다는 이유로 언론에 질타를 받고 시달립니다.
마오와의 맞대결을 피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그런 환경속에서 부상치료와 병행하며 힘들게 월드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08월드는 유럽출신의 카롤리나 코스트너선수에 대한 후한 판정으로 은메달을 주었고
엄청난 스폰서로 대회진행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일본에 대한 보답으로
트리플악셀에서 도약도 못하고 넘어진 마오에게 금메달을 줍니다.
연아는 점프 가산점도,pcs도 모두 경기력에 비해 형편없는 점수를 받으면서
동메달에 그칩니다.
고관절 부상으로 인한 통증으로 진통제를 맞으면서 경기를 펼쳤지만,
프리는 러츠 하나를 싱글로 뛴거 외엔 전체적인 경기력이 좋았기 때문에
키스앤크라이존에서도 여유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점수가 뜬 순간
얼굴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사라지고 살짝 찡그렸다가
그래도 웃으려고 노력하던 그녀의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10. 진검승부
주니어시즌부터 내내 연아를 괴롭히던 부상의 그림자가 어느정도 걷어지고
비시즌 내내 괜찮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다음시즌을 준비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09-10시즌에 들어와서 롱엣지에 대한 감점이 의무화되었기 때문에
많은 치팅점퍼들이 프로그램을 수정하게 되구요.
(스즈키아키코, 캐롤라인장은 러츠대신 룹을 뛰죠.)
마오는 본인이 적어도 벤쿠버 올림픽 이전에 절때 플러츠를 교정할수 없다고
판단한후 러츠를 아예 프로그램에서 빼고
'트리플악셀'로 대체하는 승부수를 던집니다.
그리고 금메달 제조기라는 타티아나타라소바코치의 안무를 받으면서 동시에 코치도 받기로 하구요.
하지만 쇼트에서는 단 3개의 점프를 뛰는데 그중 하나라도 실수하면 안된다는 부담감, 프리에서는 트리플악셀을 2개나 뛰어야 하는 체력적,심리적 압박때문에
실전에서의 트리플악셀 성공률은 주니어때보다 더 떨어지고 맙니다.
하지만 벤쿠버올림픽이 열리기도 전에 이렇게 빠른 타이밍으로 감점의무화가 될줄은 몰랐고,고치기엔 이미 늦었고, 러츠는 많이 망가진 상태에서 대안이 트리플악셀 하나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올림픽 10위정도를 목표로 하는 선수도 아니고
우승을 목표로 하는 선수였으니까요....
프레올림픽시즌, 부상을 벗어 던진 김연아,
올림픽에 임할 대책을 세운 아사다마오,
이 시즌 세번 맞대결하여 두번은 연아, 한번은 마오가 이깁니다.
고양시에서 치러진 그랑프리파이널에서는 자국민의 열렬한 응원속에 부담감을 느낀데다 감기몸살로 인해 제컨디션이 아니었던
연아가 프리에서 실수함으로 인해 마오가 우승했고
벤쿠버에서 열린 사대륙, La에서 열린 월드는 실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요소에서 너무나 완벽한 모습을 연아가 우승합니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벤쿠버올림픽을 예상하길
부담감을 느낀 연아가 실수를 많이 할 경우엔,
마오가 우승할 가능성이 있다 라고 합니다.
06,07년까지만해도 마오가 실수를 많이 하면 연아가 우승한다고 했었는데 말이죠.
2~3년사이에 선수에 대한 평가는 180도 바뀌어버렸습니다.
11. 올림픽시즌
단 2개월 늦게 태어난걸로 4년씩이나 기다려온, 올것 같지 않았던 올림픽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두사람 모두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하고 달려왔고
선수생명이 짧은 피겨 여자싱글선수라는 특성상 어쩌면 일생에 단 한번뿐일지도 모르는 기회를 잡기위해 두 선수 모두 최선을 다하게 되죠.
연아는 시즌초반부터 세계신기록을 달성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보인 반면
마오는 늘 좋은 모습을 보이던 자국에서 열린 국제대회 (라고쓰고 자국운동회라고 읽습니다.)에서 조차 컨디션 난조를 보입니다.
처음으로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격돌하는 것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던 1차
그랑프리에서 두 사람은 큰 실력차를 보이며 연아가 여유있게 우승하죠.
올림픽시즌을 운영하는 전략으로 마오는 1,2차 그랑프리를 연달아 출전하는 무리한 일정을 계획했고,1차에 서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2차에서는 무리한 일정소화에 지친데다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해
그랑프리시리즈 참가이후 최초로 포디움을 벗어나게 되고
국제대회 데뷔한 이후 최초로 파이널진출에 실패합니다.
연아는 1차 우승후 5차도 쇼트에서의 압도적인 경기력을 바탕으로 우승하여 무난하게 파이널에 진출하긴 했습니다만,
프리에서 보여준 흔들리는 모습은 또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청사진에 물음표가 생기게 했습니다.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컨디션에 따라 얼마든지 경기력이 바뀔수 있다는것을 보여 주었구요.
실력으로는 연아의 올림픽 금메달을 의심할수 없을정도로 압도적인 강함을 보이고 있지만
최근에 열린 올림픽에서 우승후보들이 금메달을 놓치는 징크스가 계속 되었었고,
그 징크스라는것이 강력한 우승후보들이 부담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져서 생겼다는것,
연아는 그 누구보다 큰 부담을 안고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것...들이 거론되며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확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 사이 아사다마오는 올림픽 포디움 후보들이 모두 빠진 사대륙선수권대회에서 점점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며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희망을 이어갑니다.
12.올림픽, 진정한 여왕의 등극
드디어 올림픽이 시작되었습니다.
쇼트경기날, 마오가 연아 직전에 경기를 하게 되었는데
마오가 쇼트에서 70점을 넘기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듯 했으나
연아는 마오의 호성적을 보고도 담담하게 경기를 펼쳤고
마오보다 4점이상 높은점수를 받으며 세계신기록을 일곱번째로 갱신하고
(쓰다보니 일곱번째인지 여덟번째인지 기억이 잘 안나네요;;)
쇼트 1위를 기록합니다.
마오가 이날 성공시킨 트리플악셀은 최근 2년동안 뛰었던 트리플악셀 (혹은 그 비슷한 어떤것들...)중 가장 퀄리티가 좋은 트리플악셀이었고
연아와의 점수차이도 평소보다 훨씬 적게 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연아가 실수를 하고 마오가 클린하면 마오가 승산이 있다는 계산도 나오구요.
불행인지 행운인지 연아의 프리경기는 마오 직전에 하게 되는데
마오의 특성상 연아가 실수하면 갑자기 경기력이 상승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결국 올림픽 금메달의 향방은 연아의 경기력에 따라 결정되어지게 된것이죠.
이번시즌 경기중 프리에서 실수가 많았기 때문에 긴장이 될법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침착하기 연기를 풀어나갔습니다.
점프와 스핀, 스텝에 있어서 한치의 오차도 없는 깔끔하고 완벽한 연기를 펼쳤죠.
마지막 트리플점프인 트리플러츠를 성공하고 나니
정말 저절로 일어서게 되더라구요.
마지막 점프과제인 더블악셀을 끝내고 물흐르듯 아름다운 스텝연기를 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모든 과제를 마치고 음악이 마치는 타이밍에 정확하게 엔딩포지션을 취한후 환호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저도 참 많은 생각이 났어요.
어린시절부터 피겨를 하면서 체중조절을 위한 다이어트와 강도높은 훈련을
13년간 하면서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았을텐데도 포기하지 않았고,
한국에서 피겨선수로 살아간다는 특수성때문에 가중되는 고통들, 차별들,
그것을 모두 극복해낸 그녀를 보면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답니다.
가끔 엄마가 물으세요.
너도 그때 부상치료해가면서 피겨 했으면 김연아만큼 했겠니? 이렇게요.
아우~ 천만의말씀. 절때 불가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초등학교땐 운동을 했기 때문에 공부를 거의 하지 못했고 매일 운동만 하느라 학력이 굉장히 뒤쳐졌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입학전 치른 배치고사에서 450여명 중에 430등정도 했었으니까요;;
영어 알파벳 대/소문자도 구분 못했었답니다;; (이런얘기까지 하게 되다니ㅜㅜ)
하지만 피겨에 쏟았던 그 열정을 공부에 쏟았더니 1년만에 전교10등안에 들게 되더군요. 정확히 1학년2학기 기말고사에서 전교8등을 했었거든요.
제가 근성있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시고 어머니께서 이정도 열심으로 피겨를 했으면 좀 좋았겠냐고 입버릇처럼 그러셨는데
정말이지 제 생각엔 공부에 쏟은 노력은 피겨에 쏟은 노력의 절반정도밖에 안된다고 생각된답니다.
피겨는 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울고 토하고 쓰러지기도 했지만 공부할땐 그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눈에 띄는 선수조차 되지 못했고 그렇게 그만둔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올림픽금메달리스트가 나오니 왠지 제가 금메달 딴것처럼 기쁘고 뿌듯하기까지 하네요^^
얼마전에 인간극장에서 국가대표 박소연선수를 조명해주었을때,
락커에서 아이들이 "우리는 쓰러지지도 않아...이렇게 못먹고 운동하는데도 왜 쓰러지지 않지?"라는 말을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제가 정확히 10년전에 딱 저런말을 했었거든요. 쓰러지고 싶다.
저는 결국 포기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김연아라는 선수가 좋은 롤 모델이
되어줄 것이고,이제 우리나라선수가 국제시합에서 피겨 변방국이라는 설움을
받을 일이 많이 줄었으니 후배들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원하는 멋진 피겨선수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벤쿠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연아선수~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