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의 외신 및 해외반응

[펌]피겨역사상 최고의 연기로 기록될것-AP전문번역

수리사바하요 2010. 2. 26. 16:07

원문출처 - 다음일토방의 아사묘님

http://sports.media.daum.net/general/bbs/moresports/#read^articleId=211487&&bbsId=F009&sortKey=depth&searchValue=AP&searchKey=subjectNcontent&pageIndex=1&tracker=off

 

Kim Yu-na celebrates her performance.
(AP Photo/David J. Phillip)

 

벤쿠버 - 김유나는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거대한 부담감, 그리고 그 수많은 기대들. "여왕"은 그 모두를

어지고 당당하게 전달했다.

 

한국인은 목요일 저녁 세계기록인 높은 228.56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예전 기록을 18점이상으로 깨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피겨 역사상 최고의 연기로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It may go down as one of the greatest performances in figure skating history)

 그리고 그것은 분명 서울에서 평창까지 광란적인 기쁨을 터트렸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동계올림픽에서 빙속을 제외한 종목에서의 첫 메달이다.

 

김연아조차 점수를 보는 순간 숨을 삼키며 당황한듯이 보였다. 코치 브라이언 오서는 록키(영화)처럼 꽉 잡은 두 손을 어깨위로

흔드며 승리의 자세를 취했다.

 

오랜 라이벌인 일본의 아사다 마오는  더블 토루프와의 합쳐진 트리플 악셀을 두번다 성공하며 은메달을 차지했으나 그것은

경쟁조차 아니었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부터 4일이된 조애니 로셰트는 동메달을 차지하며 1988년 리즈 맨리의

은메달이후 처음으로 캐나다에게 메달을 안겨주었다.

 

미국인들은 1952년 이후 두번째로 하나의 메달도 못따고 돌아가게 되었다. 처음? 처음은 월드 챔피언쉽에 가던중 비행기사고로

미국팀전원을 잃은 지 3년 이 되었던 1964년이었다.미라이 나가수는 미국 챔피언 레이첼 플랫이 7위로 떨어지는 동안 4위를 기록했다.

 

 김연아는 표현할수(이해할수)조차 없는 부담감과 함께 입장했다. 그녀는 단지 1988년의 카타리나 이후 가장 유력한 후보

-지난 2년간 단 한번만 패배했다- 일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녀린 어깨에 조국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한국 최고의 인기선수인 그녀는 "퀸유나"라는 별명도 얻었다-그녀의 귀에서 반짝이는 왕관들을 봐라- 그리고 그녀는 토론토에서

한국에 올때마다 보디가드가 필요했다. 그녀의 단순한 연습조차도 링크가득히 사진기자들을 불러낼 정도로 그녀가 하는 모든것은

열광을 이루어냈다. 김연아는 그 모든것을 쇼트 프로그램 이후 다른 대회와 똑같이 느껴진다고 말하며 가볍게 털어내는듯 보였다.

 하지만 목요일날 그것이 훨씬 더 많은것을 의미했다는 것이 분명했다.

 

  단순히 말하자면 그녀의 스케이팅부터 표정, 아름다운 코발트 블루 드레스까지 단 하나의 문제점도 없었다.

 

 다른 스케이터들이 프를 하기 위해 속도를 죽이고 자세를 안정시키는 반면, 그녀는 최고속도로 뛰어들어 베게와

같은 가벼움으로 안착한다. 그녀의 연결스텝들은 마치 얼음위의 예술과도 같고, 그녀의 엣지는 워낙 완벽해

최소한의 긁힘도 없었다.  그녀의 스핀들은 워낙 중심점이 정확해서 남은 마크들이 마치 각도기로 그린것과 같았고,

그녀의 콤비네이션 점프 자세들을 보면 그녀는 분명 관절이 4개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정말 독보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녀의 연기이다. 그녀는 거슈인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에 얼음판에서

악보위의 음표처럼 움직이며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음악이 시작됐을때 그녀는 한 손을 그녀의 등에 대고 빌딩의

모든 카메라들이 터지도록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오역?)

 

 그녀가 끝냈을때, 그녀가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날아가는 부담감들을 거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눈물은 계속 나왔고, 그녀는 오서에게 다가갔을때 애처롭게 손을 들어올렸다.  하도 많은 인형과 꽃들이 링크에 떨어져 스위파들이

한번이 아닌 두번이나 출동해야만 했다.

 

 그녀가 끝냈을때, 그녀가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날아가는 부담감들을 거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눈물은 계속 나왔고, 그녀는 오서에게 다가갔을때 애처롭게 손을 들어올렸다.  하도 많은 인형과 꽃들이 링크에 떨어져 스위파들이

한번이 아닌 두번이나 출동해야만 했다.

 그것에 경쟁해야한다는 것은 다음 차례인 아사다마오에게 거의 반칙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경쟁)할수없었다. 가까이조차 갈 수 없었

다.

 

쥬니어시절부터 김연아와 타이틀을 주고받던 아사다는, 점수로 꽉찬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는 몇 안되는 여선수중 한명이고,

이 날도 두번이나 성공했다. 그러나 그녀는 후에 트리플 토를 점프하기 전의 스텝에서 엉키며 싱글로 점프하게 되며 녹아내렸다.

그녀는 점수를 기다리는 동안 돌과 같은 표정을 했다. 그녀가 은메달을 따는 순간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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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번역글 - 다음일토방의 생각과마음 님(원문은 이곳에)

 

http://news.yahoo.com/s/ap/20100226/ap_on_sp_ol/oly_fig_women_s_final_13

 

 

Kim Yu-na wins gold with record score

김 연아가 세계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다

 

By NANCY ARMOUR, AP National Writer Nancy Armour, Ap National Writer – Fri Feb 26, 3:55 am ET

VANCOUVER, British Columbia –

그 모든 압박감, 그 모든 기대감들. 김연아는 그녀의 가녀린 두 어깨에 그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여왕”은 그 모든 것을 해냈고 여왕답게 멋지게 성공했다.

 

금메달.

 

세계 기록.

 

역대 최고들 중의 하나로서 영원히 기억될 여성 피겨 스케이팅 퍼포먼스.

 

목요일 밤에 한국 선수가, 228.56점을 기록하고 자신의 이전 세계기록을 18점 이상 깨면서, 올림픽 금메달로 비상했다. 스피드스케이팅을 제외한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의 한국의 첫 번째 동계 올림픽 메달이었고, 서울에서 평창까지 열광적인 축하연을 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김연아조차도, 자신의 괴물 같은 엄청난 점수를 보았을 때 숨을 헐떡이며, 자신이 한 경기에 매혹된 것 같아 보였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요,” 김연아가 말했다. “올림픽을 오랫동안 기다렸기 때문에, 커다란 부담감이 다 날아간 것 같이 느껴져요.”

 

19살의 소녀는 포디움의 맨 윗 자리로 폴짝 뛰어오르며, 드레스 밑자락을 잡아당기면서 방긋 미소를 지었다. 금메달이 그녀의 머리 위로 미끄러질 때, 그녀는 메달 양 쪽에 키스하고 위로 들어올렸다. 그녀의 입술은 애국가가 시작되었을 때 떨리기 시작했고, 그 후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우승 세러모니를 시작할 때 태극기를 건네받기 위해 곧장 달려갔고, 팬들이 환호와 박수갈채로 세레나데를 불러줄 때, 의기양양하게 그것을 지니고 세러모니를 했다.

 

“정말로 제가 올림픽에서 하고 싶었던 것을 해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오랫동안의 라이벌인 일본의 마오 아사다는 은메달을 땄지만, 경쟁자체가 되질 않았다 - 비록 아사다가 그녀의 두 개의 트리플 악셀을, 하나는 더블 토룹과의 컴비네이션으로 성공했을지라도. 아사다는 김연아보다 23점 이상을 뒤졌고, 그 차이는 너무나도 커서 김연아는 그녀의 프로그램의 후반부를 80프로만 해냈어도 우승했을 것이다.

 

사실, 김연아의 점수는 너무나도 높아서, 그 점수는 남싱 9위에 랭크될 정도였다 - 비록 남싱이 30초 더 길고 한 개의 점프를 더 뛸지라도..

 

“그것은 그렇게 해냈을 때 그렇게 완벽할 때...한 그런 프로그램들 주의 하나예요..."오서의 목소리는 서서히 사라져갔다.

 

갑작스런 모친 상 4일 후에 스케이트를 탄, 조애니 로세트는 1988년 리즈 맨리의 은메달 이래로 캐나다에 첫 여싱 메달을 선사하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저는 ‘한 사람’이 아닌 ‘조애니 선수’로서 그 곳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어떤 점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감정이 지배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관중석에 계신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느끼시도록 강해지려고 노력해야만 했어요.”

 

한편, 미국은 1952년 이래로 두 번째로 단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다른 한 번은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길에 비행기 추락으로 미국 팀이 전원 사망한 3년 후의 1964년이었다.

 

그러나 16살의 미라이 나가수가 4위로 끝마치며 희망이 생겼다. 미국 챔피언이 레이첼 플랫은 쇼트 프로그램 이후로 2위가 떨어져서 7위였다.

 

김연아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압박감을 갖고 이곳에 도착했다. 1988년 카타리나 비트 이래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현 월챔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 그녀는 지난 두 시즌 동안에 단 한 번 우승을 뺐겼다 - 그녀는 전 국가의 기대감을 안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경기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가장 인기있는 운동 선수인 그녀는 “퀸 연아” - 그녀의 반짝이는 왕관모양의 귀걸이를 봐라 -라는 애칭을 갖고 있고 훈련장소인 토론토를 떠나서 고국에 갈 때마다 보디가드가 필요하다. 그녀가 하는 모든 것이 광적인 열광을 이끌어내고, 심지어는 간단한 연습조차도 링크 가득 수많은 사진가들을 이끌어낸다.

 

피겨 스케이팅계는 또한 전통적으로 올림픽 여싱 경기는 ‘꼭 봐야만 하는 경기’라는 그 오만함과, 스타 파워를 그녀가 다시 회복시키길 기대하고 있다. 즉각적으로 머릿 속에 떠오르는 몇 몇 위대한 동계 올림픽 여신들인 도로시, 페기, 미쉘을 생각해봐라 - 열렬한 팬들에게는 성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  그러나 피겨는 미쉘 콴이 스케이팅을 그만 둔 이래로 진지한 광채를 잃어 왔다.

 

김연아는 이번 주 초에, 쇼트 프로그램이 보통 다른 경기처럼 느껴졌다고 말하면서, 신경과민들을 어깨를 으쓱하며 그냥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목요일에 명백히 드러났다. - 그녀와 1988 캘러리 올림픽에서 브라이언 보아타노에게 우승을 뺏긴 후 망연자실했던 올림픽 2회 은메달리스트인 오서 둘 다에게...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습니다,” 오서는 말했다. “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그녀의 메달입니다. 그녀는 챔피언입니다.”

 

김연아의 퍼포먼스에는, 스케이팅부터 그 사랑스런 코발트 블루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표현력까지, 눈에 보이는 흠이 전혀 없었다. 다른 선수들이 점프에 접근할 때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반면에, 그녀는 최고속력으로 휙하고 날아가서 깃털 같은 가벼움으로 랜딩을 해낸다. 그녀의 연결 스텝들은 빙판 위의 예술과 같았고, 그녀의 에지들은 거친 긁힌 자국 조차도 만들지 않았다. 그녀의 스핀들은 너무 완벽히 중심을 잡고 있어서 마치 각도기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콤비네이션 스핀들의 모든 포지션을 보면 관절이 4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녀를 탁월하게 만드는 것은 그녀의 퍼포먼스 기술이다. 그녀는 마치 악보의 음표처럼 빙판을 가로지르며,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처음에 음악이 시작되었을 때, 그녀는 한 손을 그녀의 약간 등 뒤로 하면서, 건물 전체에 카메라 셔터들의 딸깍하는 소리가 퍼지게 만드는 유혹하는 듯한 미묘한 작은 미소를 띠었다.

 

그녀가 끝마쳤을 때, 김연아가 몸을 굽히고 울었을 때, 모든 압박감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너무 많은 인형들과 꽃들이 빙판 위로 흩어져서 모든 청소요원들이 배치될 정도였다 -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망설이고 주저할 때가 아니야. 조심하고 신중해할 때가 아니야. 그냥 올림픽을 껴안아라,” 오서가 말했다. “ 우리는 이곳에 오면서 그것에 대해서 말했어요. 너는 그냥 올림픽 자체가 돼야만 해, 너는 경쟁자가 돼야만 해. 그래, 너는 아름다워. 그래, 그 프로그램들은 아름다워. 아름다운 선율. 훌륭한 공연과 안무. 그러나 너는 올림픽 자체가 돼야만 하고 독해져야만 해.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했습니다.”

 

다음 선수인 아사다가 이기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것은 가망이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할 수 없었다. 근접하지 조차 못했다.

 

“관중들의 엄청난 소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점수를 들을 수가 없었어요,” 아사다는 말했다. “그러나 소란스런 반응으로 판단해서, 그녀가 훌륭한 퍼포먼스를 해냈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니어 시절 이래로 김연아와 우승을 번갈아했던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을 시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싱 중 한 명이고, 이 날 두 개를 해냈다. 그러나 후에 그녀는 무너져 내렸고, 트리플 토를 향한 풋워크에서 비틀거렸고 싱글토로 처리해야만 했다. 그녀는 오직 4개의 점프만 깨끗이 성공했으며, 그것은 김연아보다 두 개 더 적은 것이고, 트리플 러츠나 트리플 토를 뛰지 않았다.

 

아사다는 점수를 기다리며 돌처럼 굳은 얼굴을 했다. 은메달을 받을 때조차도 작은 미소하나 짓지 않았다.

 

“트리플 악셀을 랜딩한 것에 대해선 만족해요,” 아사다는 말했다, “그렇지만 오늘의 저의 나머지 퍼포먼스에 대해선 만족하지 않습니다.”

 

로세트에게는, 그 메달은 “엄마와의 평생의 계획”의 절정이다. Therese Rochette (55)는 딸의 경기를 보기위해 벤쿠버에 도착한 몇 시간 만에 중증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로세트는 이번 주 내내 용기의 표상이 되었다.

 

아버지 Normand와 오랫동안의 코치인 Manon Perron의 응원을 받아, 로세트는 경기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목요일의 그녀의 퍼포먼스는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투풋랜딩했고 트리플 플립에서 스텝아웃했으며, 두 개의 다른 점프에서 랜딩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삼손과 데릴라”를 풍부한 감정으로 표현해내며 그 실수들을 보충했다.

 

그녀가 끝마쳤을 때, 로세트는 하늘을 향해 키스를 날렸다.

(This version corrects spelling Pyeongchang.)

 

 

 

AP – South Korea's Kim Yu-Na reacts with her coach Brian Orser after her free program at the women's figure …

한국의 김 연아가 피겨 여싱 프리 프로그램 후에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반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