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함정이니 정부는 만나지 말라”
서독 조선업체 이중 플레이 때문에 김학렬 부총리와 대판 싸움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④ |
정주영 회장이 유럽에서 1차로 접촉했던 서독의 아게베세 조선소하고는 내용상으로 이미 급수가 달랐다. 현대가 1971년 9월에 정식으로 기술과 판매협정 본계약을 체결하게 되지만 영국의 애플도어사는 실내 도크를 갖추고 특수 선박을 주로 건조하는 유명한 조선기술 회사였고, 스콧 리스고는 소형 특수 선박이지만 1만5000t급 선박을 매월 한 척씩 건조해 판매할 정도로 조선업계가 인정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1급 조선소였던 것이다. “우리가 우물 안에서만 생각을 해왔다 이거예요. 구라파로 나와서 보니까 눈이 확 트이고 말이지. 애플도어라는 회사를 만나 정보를 듣다 보니 서독에서 만난 아게베세 조선소가 우리를 얼마나 봉으로 여겼는지, 얼마나 터무니없는 기술료를 요구하면서 흥정을 했었는지, 그런 걸 다 알게 되고 말이에요.” “우릴 봉으로 알잖습니까” 아게베세 조선소가 언급됐지만 이 조선소는 정 회장만 상대한 것이 아니었다. 앞에서는 정 회장을 만나고 뒤로는 재빠르게 선을 넣어 부총리에게 자기들이 조선소를 건설해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며 흥정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김학렬 부총리와 정 회장이 부닥친 것도 사실이었다. “아게베세 조선소에서 제시한 조건의 핵심이 상당히 호조건이고 내가 생각할 때는 구미가 확 당겨요. 정 회장께서 오케이만 한다면 조선소 설계도면과 용역비로 580만 달러를 요구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거기다가 선박을 건조하는 기술협력을 해주고 판매할 때마다 판매 수수료로 선박 가격의 5%만 달라는 것이고. 이런 조건이 어디 또 있겠어요? 결국은 580만 달러로 조선소를 지어주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하하하.”(김학렬) “사람을 바깥에 내보내 놓고 정부에서 자꾸 뒤로 만나시면 협상을 어떻게 합니까? 메리도라는 친구도 앞에서는 우릴 만나고 뒤로 부총리님을 찾아갔지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서 깨지지 않았습니까? 580만 달러만 가지면 조선소가 다 되고 그게 또 훌륭한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신다면 정부에서 580만 달러 투자해서 조선소를 맨들지 뭣 때문에 이 고생을 시키십니까?”(정주영) “아니, 좋은 조건이라면 열 번이라도 만나야 되는 것이고 정 회장이 모르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정보를 주는 건데 무슨 말을 그래 해요!”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시니까 그러지 않습니까?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면 정부에 580만 달러가 없어서 못하십니까? 그 돈으로 될 일이라면 차관을 할 필요도 없고 지금이라도 저희가 빌려드리겠습니다.” “정 회장!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요. 정부에서 모르고 있는 내용이 있으면 설명을 해주어야지 무슨 말을 그래하고 있어요!” “함정이 있거나 봉으로 알고 그러는 거니까 답답하시더래도 제가 결론을 볼 때까지 정부에서 자꾸 만나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어쨌든 1차 목표는 차관이었다. 설계나 용역이 급하지 않았다. 돈줄을 잡는 것이 절실해 애플도어사를 만났어도 기자재 상담은 뒷전이고 마음은 돈줄이었다. 그런데 국제 금융 브로커의 말이 정확했던 것이다. 상담했던 애플도어사의 롱바톰(Longbattom) 회장이 영국의 버클레이 은행을 움직일 정도가 된다지 않는가? 정 회장으로서는 귀가 번쩍할 수밖에. “즉각 우리가 가지고 갔던 보따리를 다 풀었지요. 보따리라는 건 우리 계획서지요. 그러면서 조선소도 만들고 선박도 건조해야 되겠으니 어떡하든 차관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애플도어하고 기술협약도 하고 용역도 의뢰하겠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부탁을 했어요. 그랬더니 롱바톰 회장이 우리 계획서를 좍 보더니 좋다고,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오케이를 해요. 그러면서 버클레이 은행에다 차관 신청을 해보자, 그렇게 됐어요. 그러니까 롱바톰 회장은 알아볼 것 다 알아보고 버클레이 은행에다 차관 신청을 하는 거지요.” 며칠 시간을 달라 한 건 그 사이에 현대에 대해 알아본 것 아닙니까? “하하항, 그것도 얘기가 긴데 그런 셈이지요. 그런데 가만 보니까 롱바톰 회장이 그동안 거래를 많이 하고 신용이 좋았던지 은행에서 대접하는 게 달라요. 당시만 해도 우리는 외국은행에 큰 차관을 요청하는 것도 첨이고 모든 게 어리둥절하고 긴장을 했을 거 아니에요? 그걸 알았는지 은행에 가니까 아주 친절하게 계획서를 두고 가라고, 충분히 검토해서 연락을 하겠다고, 그러면서 현관까지 나와요. 그걸 보면서 역시 선진국은 은행이 존재하는 목적이 다르구나 싶었어요. 우리나라는 어디 그래요? 계획서를 제출해보는 것조차 어렵고 낸다고 해도 전부 턱으로 가리키며 거기 앉으슈, 거기 두슈, 보고 연락할 테니 가서 연락하거든 오슈, 이러잖아요.”
계획서를 낼 때 특별한 질문은 없었습니까? “일단 계획서를 봐야 질문을 하는 거겠지요. 다만 차 한잔 주면서 지나가는 말로, 조선소를 만들고 배를 건조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 소리는 해요. 근데 나는 또 그게 면접하는 건 줄 알고 얼른 대답을 했지요, 하하항. 그만큼 얼어있었던 거예요.” 어떤 대답을 하셨는데요? “늘 내가 주장하던 소리였지요. 좌우간 조선소라는 게 별거냐? 도크라는 건 목욕탕 욕조를 크게 만드는 것하고 똑같은 거다 생각하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고, 선박 건조는 커다란 철 그릇 속에다가 철로 만든 구조물 빌딩을 하나 세우는 거다 생각하면 되는 건데 그게 뭐 어렵겠느냐고, 우리가 빌딩 한두 채 지어본 게 아니라고 말이야. 설계는 아직 못하지만 영국에서 설계하고 시방서만 주면 못 만들 게 없다고 말이지. 그랬더니 막 웃으면서 재미있는 말씀이라고 그랬는데 옆에서 통역하는 눔이 쿡쿡 찌르면서 그만하셔도 된다고 그러잖아.” 사업계획서에는 조선소 규모나 건조할 수 있는 목표 물량까지 넣어두고 있었습니까?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일을 해보니까 참 장애가 많아요. 우선 정부하고 기업이 서로 마인드가 맞지 않아.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가 차관을 얻으려고 여러 나라를 교섭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영국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각국의 대사관에 상무관들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한테 한국의 조선산업 실태를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거 아닙니까? 그러면 상무관들이 어디를 통해서 실태를 조사하겠어요? 당연히 우리 정부의 관련 부처에 자료를 요청할 거 아닙니까? 그걸 알고 박 대통령은 워낙 빠른 어른이니까 즉각 외무장관을 불러 각국의 상무관들한테 오히려 브리핑을 해주라고 지시를 했어요. 그게 신뢰감도 주고 조금 부풀려도 정부 자료니까 믿을 거 아니겠어요. 근데, 그렇게 했으면 빨리 우리한테 연락해서 계획서하고 입을 맞춰야 되는 거 아니에요? 성사시키는 게 목적이잖으냐 말이야. 그런데 뭐? 정부의 3차 5개년 계획의 목표는 15만t 규모다, 이게 될 소리예요, 이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니 보고서가 어떻게 날아가겠어요. 차암 대가리 쓰는 거 보면 아직 한참 멀었다 싶은 거야. 정부가 기업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조선소를 못하게 막는 거나 뭐가 달라요? 작성한 보고서를 하나 봤더니 한국이 그때까지 최대 규모로 건조한 게 1만7000t급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밝힌 3차 5개년 계획의 목표는 15만t 규모다, 그러니 25만t급 이상의 대형 유조선을 만들 경우 한국에는 기술 인력이 없을뿐더러 건조 경험을 가진 중간관리자도 없는 실정이므로 사업계획서 내용은 타당성이 없다, 이렇게 돼있는 거야. 누가 차관을 해주겠어요!” 회장님이 제출한 계획서에는 그런 규모가 아니었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갑갑하다는 거지요! 내가 가지고 나간 사업계획서에는 부지 17만5000평, 건물 3만7611평, 건조 목표는 최대선박 50만t에 연간 25만9000t급 5척으로 되어 있고, 길이 500m, 폭 80m, 깊이 12m의 드라이 도크를 1차로 건설한다, 그럭하고 450t급 골리앗 크레인 2기를 확보하는 것이 기본 골자다, 이거거든? 근데 정부에서 목표가 15만t이라고 했으니 말이야, 이건 똥 싸놓고 매화 타령하는 꼴이지, 일을 되게끔 하자는 소리예요 이게? 더구나 그건 해명하기도 쉽지가 않아, 정부 발표니까. 해명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거짓말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둘 중에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정부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버클레이 은행에서는 시간을 끌지 않고 곧바로 검토 결과를 알려왔습니까? “아, 역시 일 처리가 빨랐어요. 우리는 은행이 그걸 전부 심사할 동안에 턱을 괴고 기다리고 있어야 될 노릇이지 별다른 방법이 없는 거 아니에요? 우리나라 은행 같았으면 니들이 영국에서 왔건 소련에서 왔건 알 바 아니니 심사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라고 했을 거야. 근데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배려했는지 다음날인가? 바로 연락이 왔어요. 언제 들어오라고 말이지. 그러고 말하는 걸 들어보니 유머도 있어요. 대체 어떤 사람인데 이렇게 큰 사업을 한다고 돈을 달라는 건지 통을 좀 들여다봐야겠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한번 면접 시험을 하겠다는 거지요, 하하하.” 그래도 적극적으로 검토를 해주고 희망을 보여준 건 버클레이 은행이 처음 아니었습니까? “그랬지요. 아주 고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들어오라는 날이 마침 월요일이야. 그래서 기다리고 있을 때가 일요일이기 때문에 긴장할 것 없이 시내 구경이나 나가자 했어요. 우리가 그동안 영국에 와서 차관에 전력하느라고 호텔 문밖을 하루도 나가보질 못했거든? 그러니 나하고 동행하는 직원은 항상 죽을 지경이지, 하하항. 기분 전환도 시킬겸 템스강 상류에 셰익스피어 생가가 있는데 거기에 구경을 갔어요. ” 워낙 바쁘신 분인데 원님 덕이 아니라 버클레이 덕에 관광까지 하셨군요. “그런 셈이지요. 점심을 먹고 돌아오다 런던 교회에 있는 윈저성도 보고 석양도 구경 했으니까요. 내가 해외를 수없이 나가지만 한번도 관광이라고는 제대로 못했어요. 정말 한번도 그럴 기회를 가지지 못했어. 그런데 그때는 생전 첨으로 여러 가지 공부를 한 셈이 됐어요. 하여간 그렇게 하고 그 이튿날 점심시간인데 12시가 돼서 버클레이 은행 부총재가 만나자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부총재가 직접 나왔는데 이상하게 점심시간에 부르는 거예요. 그런 게 우리하고는 문화의 차이랄까, 의식의 차이 같은데, 우리는 점심시간에 만나자고 하면 이거 밥을 사라는 얘기로구나,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그게 아니야, 커피와 토스트 하나 딱 들고 먹어가면서 얘기야. 그러니 괜히 지갑만 만지작거렸지. 하하항.”<계속> |
이호·객원기자·작가 (leeho5233@hanmail.net) |
출처 : 한류대학교
글쓴이 : 김유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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